지식의 보편화로 인한 시장에서 요구되는 사고능력의 변화
최근 철학이나 임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우리는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해 왔다. 좋은 교육을 받고 전문지식을 축적한 사람은 더 나은 기회를 얻었으며, 기업 역시 그 지식을 확보하기 위해 인재를 채용하고 비용을 지불했다. 그러나 AI의 발전은 이러한 경쟁의 조건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전문가의 도움이나 오랜 학습이 필요했던 정보에 누구나 접근하고, 분석과 문서 작성까지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식에 접근하는 것과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은 다르며, 접근 환경의 격차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지식을 얻고 활용하는 장벽이 낮아지는 변화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식이 널리 보급되는 시장에서 인간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이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와 함께 무엇을 질문하고, 어떤 근거로 판단하며, 그 판단을 어떻게 성과로 연결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철학적 사고의 의미가 다시 드러난다.
철학은 어려운 사상가의 말을 기억하거나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주장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전제를 드러내며, 그 믿음과 선택의 근거를 검토하는 학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이 상대방의 확신을 흔들었던 것도 익숙한 답 뒤에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흔히 말하는 성장, 효율, 성과 역시 같은 질문의 대상이다. 매출이 증가하면 좋은 성장인가, 업무 시간이 줄면 조직의 생산성이 높아진 것인가, 단기 수익이 늘어도 고객의 신뢰가 약해진다면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경영의 목표와 평가 기준을 구체화한다. AI 시대에 철학적 사고가 주목받는 이유도 이와 연결해 이해할 수 있다. 답을 생산하는 비용이 낮아지면서, 어떤 문제에 답해야 하는지 결정하고 그 답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2026년 국제 학술지 Organization Science에 게재된 파브리치오 델라쿠아와 공동연구진의 연구는 이러한 필요성을 보여준다. 경영 컨설턴트 758명이 참여한 실험에서 AI의 역량 범위에 해당하는 과제는 AI 사용자의 수행 속도와 결과의 질이 개선됐지만, 그 범위를 벗어난 복잡한 경영 과제에서는 AI 사용자가 올바른 해답을 도출할 가능성이 오히려 낮아졌다. 이는 특정 모델과 과제에서 얻은 결과이지만, AI 활용의 효과가 업무에 따라 달라지며 사용자가 그 차이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를 많이 사용했는가보다 어떤 업무에 활용하고, 무엇을 별도로 확인했는가이다. 또 2025년 CHI 학술대회에 발표된 생성형 AI와 비판적 사고에 관한 연구는 지식노동자의 자기보고를 통해 AI에 대한 신뢰와 사고에 들이는 노력 사이의 관계를 살폈다. 연구는 AI를 더 신뢰할수록 비판적 검토에 들이는 노력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고했다. 자기보고 조사이므로 AI가 인간의 사고능력을 떨어뜨린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편리한 도구를 사용할수록 검토하는 습관을 의식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심리적으로도 매끄럽게 정리된 설명은 검토가 끝난 결론처럼 받아들이기 쉽다. 특히 자신의 기대에 맞는 답이 나오면 반대 근거를 찾을 동기가 약해질 수 있다. 철학적 사고는 바로 이 순간에 작동한다. 이 답이 성립하려면 무엇이 사실이어야 하는가, 빠뜨린 이해관계자는 누구인가, 반대 사례가 나오면 판단을 바꿀 것인가를 묻게 한다. 앞으로 업무에서 중요해질 능력도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먼저 고객이 표현한 요구와 실제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마케팅을 예로 들면 AI는 광고 문안을 만들고 고객 데이터를 요약할 수 있지만, 구매가 일어나지 않는 원인이 낮은 인지도인지, 부족한 신뢰인지, 예산과 의사결정 구조인지 파악하려면 현장의 증거를 수집하고 해석해야 한다. 다음으로 사실과 추정, 상관관계와 원인을 구분하는 검증 능력이 중요하다. 여기에 서로 다른 부서의 지식과 이해관계를 연결하고, 선택의 이유를 설명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능력이 더해져야 한다. 따라서 AI 시대의 인간상은 질문하고 판단하며 실행하는 사람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다만 철학적 사고가 전문지식을 대신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산업과 고객, 기술을 이해해야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경험과 데이터가 있어야 답을 검증할 수 있다. 지식의 보편화는 전문성의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 전문성이 실제 상황을 해석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조직의 변화도 필요하다. 경영진이 질문하는 직원을 소극적이라고 평가하거나 기존 지시에 따르는 사람만 보상한다면, 철학적 사고를 강조하는 교육은 행동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합리적인 이견을 설명할 기회와 결정 이후 결과를 검토하는 절차가 함께 있어야 한다. 또한 AI로 업무 시간이 줄었는데도 바쁘게 보이는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면, 구성원은 절약한 시간을 새로운 가치 창출보다 기존 평가 방식에 맞추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기업은 업무량과 투입 시간뿐 아니라 문제 해결의 정확성, 고객 가치, 재작업 감소, 협업의 기여를 평가해야 한다.
개인 역시 학습 방식을 바꿔야 한다. AI에게 첫 번째 답을 얻는 데서 멈추지 않고, 반대 근거와 적용 조건을 찾아 실제 자료와 비교하며, 자신의 판단이 틀렸던 이유를 기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기업은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가 문제를 정의하고 근거를 설명하는 과정을 살피고, 교육에서는 실제 업무 사례를 바탕으로 AI 결과의 오류와 누락을 검토하게 해야 한다. 경영진은 업무별로 AI에 맡길 범위와 검증 책임을 정하고, 절약한 시간을 고객 이해와 실험, 구성원의 학습에 어떻게 재투자할지 결정해야 한다. 지식이 널리 보급될수록 기업의 차이는 그 지식을 판단과 행동으로 전환하는 방식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각 기업은 구성원이 더 좋은 질문을 던지고, 근거를 검토하며, 책임 있는 판단을 성과로 연결하도록 채용과 교육, 평가와 의사결정 체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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