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부정행위를 했는가, 아니면 낡은 평가제도를 증명했는가

최근 SBS 뉴스에서 흥미로운 사건을 접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의 한 학생이 자신이 개발한 AI 프로그램을 이용해 아마존과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개발자 채용 면접을 통과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면접관이 제시한 코딩 문제를 AI가 실시간으로 해결하고, 지원자는 그 답을 활용해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이후 이 사실이 공개되면서 부정행위 논란이 일어났고, 해당 학생은 대학에서 퇴학당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사업화해 수백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동일한 기술이 한쪽에서는 부정행위로 평가받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사업적 가치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물론 사전에 정해진 규칙을 어기고 AI를 사용한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단순한 부정행위로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더 중요한 질문을 놓칠 수 있습니다. AI가 이미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인간에게 AI 없이 풀도록 요구하는 것이 과연 미래의 인재를 선발하는 올바른 방식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저는 최근 여러 글을 통해 AI가 가져오는 변화가 단순한 기술 혁신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한글이 문자와 지식에 접근하는 장벽을 낮추었다면 AI는 전문지식과 문제 해결 능력에 접근하는 장벽을 낮추고 있으며, 이를 지식의 민주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오랜 교육과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던 지식과 기술을 이제는 AI의 도움으로 훨씬 많은 사람이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식을 습득하는 데 투입한 시간과 학력, 경력의 길이만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던 기존 기준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변화는 철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오랫동안 인간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왔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강조했던 질문과 성찰의 가치를 생각해 보면 지식을 많이 소유하는 것과 지혜롭게 판단하는 것은 본래 다른 문제였습니다. AI가 수많은 정답을 제공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정답을 기억하는 능력보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의하고, 제시된 답이 올바른지 검증하며, 어떤 선택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지 판단하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기업의 인재상 역시 이러한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최근 저는 AI가 업무를 대신하는 시대에 인간은 왜 계속 일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습니다. 그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인간의 노동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통해 만들어 내는 가치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점이었습니다. 과거에는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복잡한 작업을 직접 수행하는 사람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면, 앞으로는 AI를 활용해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나은 성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전문성이 불필요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결과의 정확성과 윤리성, 고객에게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고 책임지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문제는 기술이 변화하는 속도에 비해 기업의 거버넌스와 평가제도가 변화하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것입니다. 기업은 직원들에게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채용에서는 AI 사용을 제한하고, 업무의 효율화를 강조하면서도 성과평가에서는 여전히 근무시간과 업무량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더 적은 시간에 더 높은 성과를 만들어 내는 직원이 오히려 일을 적게 하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면, 그 기업은 AI를 도입했을 뿐 AI 시대의 경영방식을 받아들이지는 못한 것입니다.

이는 제가 앞서 이야기했던 AI 시대의 거버넌스 변화와도 연결됩니다. 새로운 기술을 기존의 조직 구조와 평가 기준에 그대로 끼워 넣는 것으로는 혁신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기업이 무엇을 성과로 인정하고, 어떤 능력을 인재의 조건으로 삼으며, 어떤 행동에 책임을 부여할 것인지부터 다시 정의해야 합니다. AI를 도입하는 것과 AI를 중심으로 조직의 운영 원리를 재설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뉴노멀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뉴노멀은 새로운 기술이 일상에 등장했다는 의미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예외적이었던 행동과 능력이 새로운 환경에서 보편적인 가치로 인정받고, 그에 따라 사회와 기업의 판단 기준이 변화할 때 비로소 새로운 질서가 형성됩니다. AI가 코딩을 대신하는 것은 기술의 변화이지만, AI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새로운 전문성으로 인정하는 것은 가치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의 변화가 채용과 교육, 조직 운영과 성과평가에 반영될 때 비로소 AI 시대의 뉴노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업은 이제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기초적인 전문지식과 독립적인 사고 능력을 검증하는 과정은 유지하되, 실제 업무와 유사한 환경에서 AI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평가하는 방식도 필요합니다. 또한 AI가 제시한 결과를 얼마나 비판적으로 검토하는지, 고객과 조직의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는지, 기술적 가능성을 실제 사업적 가치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새로운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기존 인력에 대해서도 새로운 도구를 익히는 교육을 넘어 문제를 정의하고 판단하며 책임지는 역량을 키우는 재교육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경영진의 시각이 먼저 달라져야 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직원에게 기존 방식대로 일할 것을 요구하면서 혁신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CEO는 성과의 정의를, CHRO는 인재의 기준을, CTO는 인간과 AI의 역할을, CFO는 생산성과 투자수익을 측정하는 방식을 함께 재설계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인사제도 개선이 아니라 기업이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경쟁할 것인지 결정하는 경영전략의 문제입니다.

로이 리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부정행위가 혁신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기존의 규칙을 지키는 문제와 그 규칙이 미래에도 유효한지를 검토하는 문제는 별개라는 사실입니다. 규칙은 공정성을 위해 필요하지만, 그 규칙이 측정하려는 능력과 실제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 사이에 간격이 커진다면 규칙 자체도 진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는 시대를 넘어 인간의 능력과 노동, 지식과 전문성, 성과와 책임의 가치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진정한 뉴노멀은 새로운 기술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고, 과거의 성공 기준을 의심하며, 변화한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앞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은 AI를 가장 많이 도입한 기업이 아니라, AI로 인해 달라진 인간의 가치를 가장 먼저 이해하고 이를 새로운 경영질서로 정착시킨 기업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새로운 AI 솔루션을 도입하기에 앞서 우리가 여전히 과거의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하고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인간에게만 요구해야 할 능력과 AI와 함께 만들어야 할 성과를 구분하고 있는지, 그리고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 내는 가치를 제대로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진정한 뉴노멀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만이 아닙니다.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시각, 그 가치를 인정하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제도로 만들어 내는 경영의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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