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효율성의 역설과 거버넌스의 변화

저는 항상 AI 도입으로 인한 생겨날 수 있는 사회현상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근 기업들은 AI와 피지컬 AI 도입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인건비를 줄이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면 제품과 서비스의 원가는 낮아지고 수익성은 개선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모든 기업이 같은 방식으로 효율성을 추구한다면, 그렇게 생산된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소비자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기업이 절감하려는 인건비는 다른 한편으로 시장을 구성하는 소비자의 소득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시장경제는 기업이 사람을 고용하고, 사람은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으며, 그 임금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순환구조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기업이 지급한 임금은 비용으로 기록되지만, 경제 전체에서는 다른 기업의 매출을 만들어 내는 구매력이 됩니다. 그런데 AI가 지적 노동을, 피지컬 AI가 육체적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는 시대에는 이러한 순환구조에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개별 기업은 인건비를 줄여 이익을 높일 수 있지만, 모든 기업이 동시에 고용을 축소하고 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지 않는다면 전체 시장의 소비 여력은 약해질 수 있습니다. 개별 기업의 합리적인 선택이 경제 전체에서는 비합리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이른바 구성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AI 도입이 반드시 고용과 소비의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생산성 향상으로 제품 가격이 낮아지고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가 창출된다면 소비자의 실질 구매력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긍정적인 결과가 자동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 낸 부가가치가 소수의 기업과 자본 소유자에게 집중되고, 다수의 가계에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면 생산능력과 소비능력 사이의 불균형은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경제사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 체계를 구축한 유럽 국가들은 생산된 상품을 판매할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했고, 이러한 경제적 동기는 제국주의 팽창을 설명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축적 과정에서 외부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제국주의는 군사적 경쟁과 정치적 지배, 자원 확보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했으며 시장 확대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생산능력의 확대가 새로운 수요를 요구한다는 역사적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생각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새로운 영토와 시장을 확보하려 했다면, AI 시대에는 데이터와 플랫폼, 기술 표준과 글로벌 서비스 시장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의 모든 기업이 동시에 생산성을 높이는 상황에서 새로운 소비시장은 어디에서 만들어져야 할까요?

특히 한국은 이러한 질문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와 피지컬 AI의 도입이 필요한 국가입니다. 부족한 노동력을 로봇으로 보완하고 지식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인구감소는 생산인력뿐 아니라 소비인구의 감소도 의미합니다. 여기에 자동화로 인한 노동소득 감소까지 겹친다면 생산능력은 유지하거나 확대하면서도 국내 소비시장은 위축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수출 대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더라도 국내 소비에 의존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다른 현실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국제 연구 역시 기술 발전의 성과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국제노동기구가 2025년 발표한 생성형 AI와 일자리 연구에서는 전 세계 노동자의 약 4분의 1이 생성형 AI에 일정 수준 노출된 직업에 종사하지만, 직업의 완전한 소멸보다는 업무의 변화가 더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세계경제포럼의 2025년 미래 일자리 보고서 또한 기술 발전과 인구구조 변화 등으로 2030년까지 상당한 규모의 일자리 창출과 대체가 동시에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러한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AI 시대의 핵심은 단순히 일자리가 얼마나 사라지는가가 아니라 새로운 생산구조 속에서 인간의 역할과 소득, 경제적 기회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AI 거버넌스를 이야기할 때 주로 개인정보 보호, 알고리즘의 투명성, 보안, 윤리적 책임과 같은 기술적 통제 문제에 집중합니다. 물론 모두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나 AI가 기업의 생산방식과 고용구조, 소득분배와 소비시장까지 변화시킨다면 거버넌스 역시 기술의 위험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경제적·사회적 영향을 조정하는 체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앞으로 필요한 것은 AI를 어떻게 안전하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뿐 아니라 AI가 만들어 낸 생산성의 성과를 어떻게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경영 원칙입니다.

이제 기업의 경영진은 AI 도입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부터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직원 100명이 하던 일을 60명으로 수행하게 되었다면 생산성은 높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은 40명의 노동력이 어디로 이동하고, 새로운 소득을 어떻게 창출하며, 그 결과 시장의 소비능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기존 ROI 계산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습니다. 물론 한 기업이 전체 사회의 고용과 소비를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결국 구매력을 가진 고객이 존재할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AI 거버넌스는 이러한 장기적 관점에서 기술투자와 인력운영, 시장전략을 연결하는 의사결정 체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CEO가 AI를 단순한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과 시장을 창출하는 성장 수단으로 정의하고, CFO는 인건비 절감뿐 아니라 재교육 비용과 신규 매출, 장기적인 투자회수 가능성을 함께 평가해야 합니다. CTO는 기술적 자동화 가능성과 실제 사업적 가치를 구분하고, 인사조직은 자동화 이후 남는 인력을 어떻게 재배치하고 성장시킬 것인지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AI 도입 이전부터 업무별 자동화 영향과 고용구조의 변화, 인재 재교육 계획, 새로운 고객 수요의 창출 가능성을 함께 검토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나아가 정부와 산업계는 생산성 향상의 성과가 고용과 소득, 소비로 연결될 수 있도록 교육제도와 사회안전망, 산업정책을 함께 발전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기술의 발전이 경제성장을 가져온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풍요는 반드시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생산량이 증가해도 소비자의 구매력이 약해진다면 시장은 성장하기 어렵고, 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더라도 그 성과가 사회 전체의 삶의 질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제 AI 시대의 진정한 뉴노멀은 얼마나 적은 사람으로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기술이 만들어 낸 생산성을 어떻게 새로운 소득과 소비, 지속 가능한 시장으로 연결할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기업이 비용을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제품을 구매할 소비자를 잃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효율성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지금 각 기업이 준비해야 할 것은 AI 도입 계획만이 아닙니다. 자동화 이후 인간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생산성의 성과를 새로운 가치와 시장으로 전환하며, 그 모든 과정을 책임 있게 관리할 새로운 거버넌스입니다. AI가 생산하는 시대에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생산능력만이 아니라 그 생산물을 소비할 수 있는 시장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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