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마르크스의 가치론을 다시 묻다
마르크스는 로봇과 AI를 염두에 두었을까? 그가 오늘날의 생성형 AI와 자율 에이전트를 구체적으로 예견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학과 사회적 지식이 기계에 축적되면서 인간의 직접 노동보다 생산체계 전체의 역량이 중요해지는 변화는 이미 분석했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 등장하는 ‘일반지성’의 논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오늘날 AI를 여기에 연결하는 것은 현대적 해석이지만, 사회가 함께 축적한 지식이 생산수단에 구현되고 그 소유자의 힘으로 나타난다는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AI의 등장을 노동가치론의 종말로 선언하기에 앞서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설명한 상품의 가치,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 인간이 누려야 할 존엄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AI가 만든 결과물이 비싸게 팔린다고 노동가치론이 즉시 반박되는 것도 아니며, 어떤 업무의 시장가격이 낮아졌다고 그 일을 하던 사람의 존재 가치까지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의 가치론은 개인이 고생한 시간에 비례해 보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아니다. 기준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므로 생산조건이 바뀌면 그 기준 역시 달라진다. 이를 인사평가의 공식으로 직접 적용할 수는 없지만, AI로 업무를 개선한 직원보다 같은 일을 오래 붙잡고 있는 직원을 더 높이 평가하는 관행을 돌아보게 한다. 기술은 시간을 줄이는데 조직이 여전히 오래 일한 흔적을 요구한다면, 생산성 혁신은 평가제도 앞에서 멈추게 된다.
그렇다고 산출량만 평가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검증되지 않은 보고서 백 건이 정확한 의사결정 하나보다 높은 성과가 될 수는 없다. 기업은 고객 문제의 해결과 품질을 평가하되,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고 오류를 예방하며 동료가 재사용할 지식을 남긴 기여까지 인정해야 한다. 개인의 단기 실적만 보상하면서 조직의 지식 공유를 요구하는 것은 제도 자체의 모순이다.
여기서 과거의 지식과 현재의 노동 사이의 관계가 중요해진다. AI에는 연구와 개발, 창작과 현장 경험이 반영되어 있지만, 모든 학습 데이터를 마르크스의 ‘죽은 노동’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지식이 기술의 기반이 된다는 설명과 과거 노동의 가치가 현재 상품으로 얼마나 이전되는가라는 설명은 구분해야 한다. 마르크스 역시 기계에 담긴 기존 가치의 이전과 살아 있는 노동의 새로운 가치 창출을 구별했다.
또한 AI의 추가 생성 비용이 낮아지는 경우에도 추론 인프라, 데이터 갱신, 검증과 장애 대응의 비용은 남는다. 경영진이 살펴야 할 것은 결과물을 만드는 속도와 함께 그것을 믿고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전체 비용이다. 과거 지식을 모델에 담았다는 이유로 현재의 전문가를 불필요한 비용으로 취급하면,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고 오류를 수정할 능력부터 약해질 수 있다.
ILO와 NASK가 2025년 발표한 연구도 생성형 AI에 대한 직업의 노출을 실제 일자리 감소와 구분하면서, 많은 직업에서는 완전한 대체보다 업무의 변형이 더 가능성 높은 결과라고 설명한다. 이는 기업이 직무를 통째로 없앨지 판단하기 전에 자동화할 과업과 사람이 계속 담당할 과업을 나누어야 함을 시사한다.
그러나 사람이 검증하면 된다는 선언만으로 업무 재설계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모든 결과물을 전수 검토하게 하면 검증 비용이 자동화의 이익을 잠식하고, 처리량을 감당하지 못한 검토자는 형식적인 승인에 익숙해질 수 있다. 반대로 검증을 생략하면 오류가 빠르게 확산된다. 이 문제는 개인의 주의력을 독려하기보다 위험도에 맞춰 통제방식을 설계해야 풀 수 있다.
영향이 작고 쉽게 되돌릴 수 있는 업무에는 자동 점검과 표본 검토를 적용하고, 고객의 권리나 안전, 중요한 재무 판단에 영향을 주는 업무에는 독립적 검토와 승인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같은 요약이나 코드 작성도 사용처에 따라 위험은 달라진다. 검토자에게는 판단에 필요한 정보와 시간, 실행을 거부하거나 중단할 권한이 함께 주어져야 한다. NIST의 AI 위험관리 프레임워크도 인간과 AI의 역할을 구분하고 사용 맥락에 따라 위험을 평가하며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접근을 강조한다.
데이터 구조 역시 이러한 책임체계와 연결되어야 한다. 데이터를 많이 모으거나 온톨로지를 만든다고 신뢰가 저절로 확보되지는 않는다. 자료의 출처와 이용 권한, 최신성, 개념 사이의 관계, 오류 수정 담당자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의 경험을 데이터로 전환하는 과정에는 해당 업무를 아는 구성원의 참여가 필요하며, 지식을 제공한 사람이 성과와 성장 기회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분배 문제도 리더의 선의에만 맡길 수 없다. AI가 만든 이익을 재교육과 보상에 활용하겠다는 약속은 예산과 절차, 구성원의 참여권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IMF의 2025년 연구는 AI가 일부 노동자의 임금과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자본수익을 통해 자산 불평등을 확대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생산성의 상승과 공정한 분배는 별도로 설계해야 하는 과제라는 뜻이다.
기업의 비용 절감이 사회 전체의 구매력 감소로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격 하락과 신규 투자, 새로운 일자리도 수요를 만들 수 있다. 다만 노동소득의 감소를 이러한 효과가 충분히 보완하지 못한다면 개별 기업의 효율화가 시장의 수요 기반을 약화시킬 위험은 존재한다. 그래서 기업 내부의 이익 공유와 함께 사회 차원의 재교육, 실업 안전망, 소득 보장과 과세제도를 논의해야 한다. 기본소득도 이 가운데 재원과 효과를 비교해 검토할 선택지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3권에서 자유의 영역을 논하며 노동일의 단축을 그 기본 전제로 제시했다. 오늘날의 경영이 그의 사회 구상을 그대로 채택할 필요는 없지만, 기술이 절약한 시간이 누구의 자유가 되는가라는 질문은 피하기 어렵다.
기업은 우선 자동화 이전의 비용과 품질을 측정하고, 도입 이후에는 검증 비용과 오류, 업무 강도까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 CEO는 전환의 목표와 책임자를 정하고, CFO는 절감 효과를 실제 재무성과와 구분해 재투자·보상 기준을 마련하며, CTO는 데이터의 출처와 접근권, 감시·중단·복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구성원이 업무 재설계에 참여하고 전환 과정에서 필요한 학습을 보장받는 절차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각 기업은 줄어든 노동시간이 더 큰 과로와 불안으로 돌아오지 않고 새로운 사업과 역량, 지속 가능한 시장으로 연결되도록 지금 어떤 거버넌스를 준비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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