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수집 전쟁의 다음 단계: 양이 아니라 경험이다

전기자동차 시장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앞으로 전기차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과연 배터리 용량과 주행거리일까. 물론 배터리 가격과 충전 속도, 주행거리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전기차 기술이 일정 수준 이상 평준화되기 시작하면 자동차를 선택하는 기준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변화의 중심에 자율주행이 있다. 그리고 자율주행의 경쟁력을 한 단계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 데이터라는 문제와 만나게 된다. 테슬라는 현재 FSD를 훈련하기 위해 실제 차량에서 수집한 수십억 마일의 익명화된 주행 데이터를 활용한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2026년 공개된 테슬라의 FSD 안전 데이터에는 누적 FSD 주행거리가 110억 마일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난다. 자동차를 많이 판매한다는 것은 이제 단순히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일이 아니다. 수백만 대의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며 현실 세계를 관찰하고 새로운 상황을 경험하며 다시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거대한 학습 네트워크를 확보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생긴다. 자율주행의 성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누가 더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가일까.

최근 연구는 이 질문에 조금 다른 답을 내놓고 있다. 자율주행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평범한 주행 상황이 아니라 거의 발생하지 않는 Long-tail, 즉 희귀 상황이다. 갑자기 도로로 뛰어드는 보행자,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차량, 공사장의 임시 신호, 악천후로 사라진 차선처럼 발생 빈도는 낮지만 사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2026년 발표된 OpenLongTail 연구 역시 자율주행 성능 향상의 중요한 병목으로 이러한 희귀한 Edge Case 데이터의 부족을 지적한다. 2025년 발표된 LTDA-Drive 연구에서는 희귀한 객체와 상황을 생성해 학습 데이터를 보완했을 때 해당 희귀 클래스의 탐지 성능이 크게 개선되는 결과도 나타났다. 결국 정상적인 고속도로 주행 데이터 1억 건을 추가하는 것보다 AI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험한 상황 하나가 더 가치 있는 학습 자료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데이터 경쟁의 기준이 Volume에서 Experience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이 문제를 인간의 학습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축구를 하는 로봇을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10만 명의 일반 축구선수에게 센서를 부착해 움직임을 수집하면 엄청난 데이터가 만들어질 것이다. 걷고 뛰고 넘어지고 공을 받고 패스하고 슈팅하는 수많은 행동을 학습할 수 있다. 이러한 데이터는 AI가 축구라는 세계의 평균적인 행동과 다양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세계 최고의 축구 로봇을 만들 수 있을까. 여기에서 손흥민과 같은 정상급 선수의 데이터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중요한 것은 그가 몇 골을 넣었느냐라는 결과 데이터가 아니다. 수비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는지, 어느 순간 가속했는지, 공을 받기 전에 어디를 바라봤는지, 골키퍼의 위치를 언제 확인했는지, 왜 패스가 아니라 슈팅을 선택했는지, 슈팅 순간 몸의 무게중심과 발의 각도가 어떠했는지 같은 과정의 데이터다. 일반 선수 10만 명의 데이터가 AI에게 ‘축구를 하는 법’을 가르친다면 최고의 선수에게서 얻은 정밀한 경험 데이터는 ‘축구를 탁월하게 하는 법’을 가르칠 가능성이 있다.

인간의 전문성에 관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 전문가는 단순히 같은 행동을 많이 반복한 사람이 아니다. 오랜 시간 경험하고 실패하고 수정하면서 특정 상황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고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를 몸과 사고 속에 축적한 사람이다. 전문성 연구에서는 이러한 실천적 지식과 암묵지, 그리고 오랜 학습 과정이 전문가의 탁월한 성과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논의되어 왔다.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가 말했던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통찰도 여기에서 다시 의미를 갖는다. 숙련된 기술자는 기계의 미세한 소리를 듣고 이상을 감지하고, 경험 많은 영업사원은 고객의 짧은 반응에서 계약 가능성을 읽으며, 뛰어난 의사는 검사 결과만이 아니라 환자의 표정과 말투, 여러 증상의 조합에서 위험 신호를 발견한다. 문제는 이러한 지식 대부분이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사람의 경험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최근 로봇 연구가 인간의 Demonstration을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5년 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단 한 번의 인간 작업 영상을 이용해 로봇이 여러 단계의 Pick-and-Place 작업을 학습하도록 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많은 데이터가 없더라도 의미 있는 인간의 행동을 구조적으로 포착하면 로봇 학습에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2026년 공개된 로봇수술 데이터셋 ImitateCholec 역시 단순한 수술 영상만 모은 것이 아니라 여러 시점의 영상과 로봇의 운동 데이터를 결합하고 수술 과정을 세부 작업으로 나누어 기록했다. AI가 필요로 하는 것은 결과의 기록만이 아니라 상황과 판단, 행동이 연결된 경험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중국이 AI와 로봇 산업에서 갖는 강점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흔히 중국은 거대한 인구 때문에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구 자체보다 그 인구와 거대한 제조·서비스 생태계가 만들어내는 현실 세계의 경험 데이터일 수 있다. 최근 미국의 관련 자문기구도 중국에서 AI가 산업 전반에 광범위하게 배치되면서 발생하는 실제 사용 데이터가 중국 AI 기업들의 발전에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으며, 특히 Embodied AI에서는 이러한 대규모 배치가 새로운 경쟁 변수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중국 로봇기업 Unitree는 인간이 로봇을 조작하는 실험을 통해 Physical World Training Data를 축적하고 있으며, 최근 DeepSeek과의 협력에서도 언어모델의 지능을 현실세계의 로봇 행동으로 연결하는 문제가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중국의 진정한 데이터 경쟁력은 14억이라는 숫자 그 자체가 아니라 거대한 인구와 공장, 자동차, 로봇, 물류망이 매일 만들어내는 수많은 실제 경험을 얼마나 빠르게 AI의 학습 데이터로 바꾸느냐에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서 또 하나의 문제가 등장한다. 데이터가 국가와 기업의 지능을 만드는 원료가 된다면 그것을 누가 수집하고 누가 소유하며 누가 학습할 수 있는가라는 데이터 주권의 문제가 생긴다. 미국이 최근 중국산 휴머노이드와 4족 보행 로봇의 신규 제품 반입을 제한하기 시작한 배경에도 단순한 산업보호만이 아니라 사이버 공격과 데이터 탈취, 감시 가능성에 대한 국가안보 우려가 존재한다. 로봇은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카메라와 센서로 공장과 도시를 보고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며 공간을 이해하는 움직이는 데이터 수집 장치다. 자율주행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수집하는 것은 차선과 신호등의 정보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도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Physical World Data다. 그렇다면 데이터 주권은 개인정보가 어느 서버에 저장되는가라는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와 산업이 만들어낸 경험을 누가 AI의 지능으로 전환할 권리를 갖는가라는 문제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 변화는 기업의 데이터 전략에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데이터를 많이 저장하는 것을 경쟁력이라고 생각했고 Data Lake와 Data Warehouse를 구축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다. 그러나 앞으로 중요한 질문은 데이터가 몇 페타바이트 있는가가 아닐 것이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뛰어난 엔지니어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최고의 영업사원이 고객을 판단하는 과정, 숙련된 생산직원이 불량을 발견하는 과정, 실패한 프로젝트에서 조직이 의사결정을 수정했던 과정이 데이터로 남아 있는가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결과만 기록한다면 AI는 결과밖에 배울 수 없다. 반대로 상황과 판단, 행동과 결과가 함께 기록된다면 AI는 조직의 경험을 학습할 수 있다. 결국 앞으로 기업이 만들어야 할 데이터의 구조는 단순한 Input과 Output이 아니라 Situation에서 Perception으로, Perception에서 Decision으로, Decision에서 Action으로, 그리고 Result와 Feedback으로 이어지는 경험의 사슬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경영의 오래된 문제가 AI 시대의 새로운 문제로 돌아온다. 조직은 사람이 떠날 때마다 경험을 잃어왔다. 숙련된 기술자가 퇴직하면 수십 년의 노하우가 함께 사라졌고 뛰어난 영업사원이 회사를 떠나면 고객을 읽는 감각도 함께 사라졌다. 지금까지 기업은 이를 매뉴얼과 교육으로 보완하려 했지만 인간의 경험을 모두 문장으로 기록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AI와 센서, 업무 로그, 영상, 음성, 디지털 프로세스가 결합하면 과거에는 기록할 수 없었던 판단 과정까지 데이터화할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업무 자동화보다 훨씬 큰 변화다. 인간에게 축적되던 암묵지가 처음으로 기업이 소유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AI 시대의 데이터 경쟁은 Big Data에서 Quality Data로, 다시 Context Data와 Experience Data로 이동할 것이다. 많은 데이터는 여전히 필요하다. 다양한 일반 선수의 데이터가 있어야 축구라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수십억 마일의 주행 경험이 있어야 자율주행의 기본적인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평균적인 데이터만으로는 평균 이상의 지능을 만들기 어렵다. 실패했던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 최고 전문가가 남들과 다르게 판단했던 순간, 조직이 위기를 해결했던 과정처럼 희귀하고 가치 있는 경험이 AI의 다음 경쟁력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이젠 “우리 회사는 데이터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우리 조직에서 어떤 경험이 매일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중 어떤 경험이 경쟁사가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인지, 최고의 전문가가 가진 판단과 암묵지를 어떤 방식으로 데이터로 남길 것인지, 실패와 예외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경험 데이터를 외부 AI에 무분별하게 넘기지 않고 우리 기업의 지능으로 축적할 수 있는 데이터 주권과 AI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미래의 AI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거대한 데이터 저장소가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된 인간과 조직의 경험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데이터 수집 전쟁의 다음 단계는 양의 경쟁이 아니라 경험의 경쟁이며, AI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가치 있는 경험을 데이터로 만들고, 그것을 지켜내며, 다시 자신만의 지능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에서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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